7개 언론법안 개정 이후…가상현실 도미니 씨의 하루

한나라당이 지난달 3일 발의하여 연말·연초 내내 국회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미디어 관련법이 우여곡절 끝에 여야 합의로 '이른 시간 내에 합의 처리'(언론중재법과 전파법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협의 처리)하는 쪽으로 타결되었다.

언론노동자들이 신문을 비우고 방송을 끊는 등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도 엄청났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 정부와 한나라당은 "언론 다양성의 신장, 콘텐츠 산업의 육성, 미디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 언론노조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로 보고 있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것이다.

"공영방송·지역신문 오데로 갔노?"

보름 가까이 총파업 투쟁을 벌였던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일시 총파업 중지'를 선언했지만, 미디어 관련법을 정부와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면 즉각 총파업 투쟁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들은 미디어 환경과 우리의 민주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중차대한 법안임에도 개정안이 발의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때문에 '국민과의 합의처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연 미디어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가상현실 도미니 씨의 하루'를 통해 미디어 관련 법안 통과 이후의 모습을,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황강이 낙동강에 합류하기 직전에 있는 합천군 청덕면 가현리에 사는 도미니(41) 씨,

면사무소 사무실에서 펼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를 훑어보고는 오늘도 '제대로' 혈압이 올랐다. 2012년, 지구 온난화로 시도 때도 없이 집중호우가 쏟아지는가 하면 우기인 7~8월에도 가뭄이 지속하는 등 일기에 큰 영향을 받는 농사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도 4월 말까지 가뭄이 이어져 바싹 마른 양파 밭에 물 대느라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5월 들어 한 번씩 부슬부슬 비를 뿌리기에 해갈되려나 보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11일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들판은 물론이고 마을까지 불어난 강물에 모조리 잠기고 말았다.

집중 폭우도 폭우라지만, 몇 년 전 낙동강 치수 사업한답시고 온통 강바닥을 파 뒤집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가을부터 정성 들여 길러 이제 수확이 시작된 양파며 수박밭은 물론이고 들판보다는 고지대에 있는 돈사며 우사까지도 강물이 모조리 휩쓸고 가버렸다. 숱한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고 다쳤다. 군에 회의 갔다 온 면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청덕면만 그런 것도 아니란다. 경호강을 낀 산청과 함양까지 가야산과 지리산 사이 골짜기가 모조리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는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도미니 씨 등 청덕면민 2000여 명 중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서 유례가 없는 재해를 복구하려고 구슬땀을 흘린 지 사흘째이다. 살아남았다고 안도하기에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 처참하고 엄혹했다.

3년 전 시작된 경기불황은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이어지고 있고, 한미FTA가 타결돼 값싼 미국산 농산물이 밀려드는데다 치솟는 물가로 말미암아 농민들은 더는 버틸 힘이 없다.

즐겨보던 TV프로 조용히 없어지고 온종일 대통령만
지역신문 흡수한 조·중·동 '서민 뉴스'는 딴나라 이야기
볼 것도 없고 읽을 것도 없고…술 안주는 '나라 씹기'뿐


이런 사정인데도 '조중동'에서는 농촌 현실은 외면하고 텔레비전에도 온통 도시에서 잘 사는 사람들 이야기만 흘러나오고 있다.

걸핏하면 '가보고 싶은 곳'이네 뭐네 하면서 자연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고, 인심이 순한 고향 마을처럼 방송을 해대더니 이렇게 큰 피해를 보았는데도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는 현실에 도미니 씨는 절망했다.

"예전 <경남도민일보>나 <경남신문>과 같은 지역신문이 있을 땐 그래도 기사가 나왔는데…." 2010년 10월, <경남도민일보>와 <경남신문> 등 전국에 있는 지역신문들은 대부분 '조중동'으로 흡수되었다. 한나라당이 신문법을 고치면서 신문사 간 인수·합병을 무제한으로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영미디어렙이 도입되면서 지역신문의 광고가 모두 방송으로 쏠려 지역신문들은 경영난을 타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방송법도 바뀌어 대기업·신문·뉴스통신이 지상파를 20%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조중동'은 대자본, 외국자본을 등에 업고 방송까지 틀어쥘 수 있었다. 2009년 하반기부터 삼성CJ중앙TV, 현대차문화방송, LG조선폭스방송이 속속 등장했다.

심하게 넋두리를 한 탓일까. 도미니 씨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옆에 있던 '한단결' 농민회장과 점심을 먹으려고 자주 가는 '맛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치찌개를 시키고 나서 '혹시 우리마을 재해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하고 TV를 켰으나, 현대차문화방송에서는 온통 국외 순방 중인 대통령 이야기만 쏟아질 뿐이다. '하긴, 이번 대통령 순방이 현대차와 얼마나 관련이 많은데. 현대차 오너가 사주로 있는 방송에서 띄워 줄 수밖에 없지'하고는 TV를 꺼버렸다.

김치찌개를 기다리고 있는데, 읍에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얍! 활력천국>이 오늘 '막방'(마지막 방송)이란다. 이게 우찌된 일이고?" 마산MBC에 다니는 기자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얼마 전 마산 MBC를 인수한 LG조선폭스방송에서 <얍! 활력천국>을 전격 폐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제작비에 견줘 효율성이 떨어진다나 어쩐다나…. 그러고 보니, 요즘 지역방송에는 6명 이상이 죽는 교통사고가 아니면, 또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엽기적인 사건'이 아니면 보도가 되지 않았다. 전국으로도 방송사의 본기능이랄 수 있는 시사프로그램이 사주가 탐탁지 않다고 하거나 광고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에 사라지고 있었다.

도미니 씨는 순간, 2008년 겨울 한 송년 모임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마산MBC 오공정 아나운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7대 악법의 핵심은 신문법과 방송법을 바꿔서 '조중동'에게 방송 하나씩 주고, 지상파 MBC에 대기업 자본 참여하게 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하게 하자는 거다. 이들이 방송을 장악하는 순간 국가는 재난상태에 빠질 것이다. 대기업이 MBC를 소유하게 되면 '2580'이나 '피디수첩' 같은 시사프로그램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이 아무리 비정규직 문제를 말해도, 농민들이 농가부채 해결하라고 외쳐도 이것을 취재하는 기자는 없을 것이고, 설령 취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보도하는 방송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미니 씨는 점심을 먹고 나서 마을회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 토론방'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정부와 자본가의 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와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댓글이나 추천이 잘 붙지 않는다. 힘이 실리지 않는다. 2~3년 전만 해도 토론 열기로 가득했던 인터넷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면서 이제는 도리어 냉기만 흐를 뿐이다.

아닌게아니라 이 법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 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고, 특히 '반의사불벌죄'로 모욕을 당했다고 당사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국가가 알아서 상대방을 모욕죄로 처벌해 줬기 때문에 누리꾼들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댓글놀이'는 이제 추억 속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도미니 씨는 고립감, 무기력에 한숨만 나왔다.

어느덧 저녁. 하도 갑갑해서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갈 수 없었던 도미니 씨는 김비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 전, 농민회 교육부장으로 일할 때 초청강연 강사로 섭외하면서 알게 된 김 교수. 마음이 워낙 잘 통해서 '형님 동생'하며 지낸다. 읍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고갈비'에 소주를 마시기로 했다. 도미니 씨는 연방 술잔을 비우더니 "캬~아" 하고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형, 세상이 와 이리 팍팍해졌노. 정말 갑갑해서 못살겠다. 세상이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

"어이구, 경제 살려준다고 한나라당 찍을 땐 언제고….(웃음) 우리나라가 비슷하게 따라가려는 나라 이야기 좀 해야겠다. 이탈리아에 베를루스코니라는 총리가 있어.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방송, 영화, 출판사, 보험, 은행과 AC밀란을 소유한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지. 1994년 정계에 진출한 그는 막대한 부와 언론을 등에 업고 두 달 만에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지. 벌써 총리만 세 번이나 했어. 이명박 대통령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유능한 CEO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라던가, '좌익이 나라를 망친다'는 모토로 이탈리아를 '신자유주의 파시즘'으로 이끌었어. 또 각종 부패와 돈세탁, 범죄 혐의에도 강력한 언론 통제를 바탕으로 그냥 '아무 일 도 없이' 넘어갔었지. 그는 또 공영방송을 손보는 '가스파리법'(공영방송 RAI 이사의 3분의 2를 정부와 여당이 선임할 수 있게 함)을 통과시켰어. 놀라지 마라.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 이탈리아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거든. 그래서 이탈리아 시민 300만 명이나 모여 반전 시위를 벌였어. 그런데도 공영방송에는 이 뉴스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언론의 문제가 단순하게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어. 우리나라도 조만간 이탈리아 꼴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니.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영화 <토탈리콜>이나 <매트릭스>처럼 우리는 칩이 내장된, 완벽히 통제된 사회로 나갈지도 몰라. 사람들이 '조중동·재벌방송·국가교육·사법·경찰' 등에 의해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몰라. 지금의 미디어 관계법은 노예제도의 완성에 이르는 급행열차라 생각해. 개인만 정신 바짝 차리면 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만났건만, 줄곧 암울한 이야기만 들었다.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 도미니 씨. 발걸음이 영 무겁기만 하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9시 뉴스'를 보려고 TV를 켰다. 첫 뉴스는 역시나 대통령 이야기였다. 한미FTA 때 미국 자동차 산업 이익을 챙기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밀려 내 줄 것은 다 내준 처지에 이번에는 유럽쪽에 가서 또 FTA 체결하겠다고 갔다는데, 거의 큰 틀에서 합의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우리 산업이 입을 피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는다. 화가 나서 채널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지상파는 '주말엔 더 깊숙이'와 같은 낯뜨거운 프로그램이 점령한 상태였다.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저질 프로만 나왔다. 채널은 늘었으나, 볼거리는 오히려 줄었다.

도미니 씨는 TV를 끄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비판 교수가 헤어질 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술김에 한 이야기라도 해도 너무나도 오싹했다. "만에 하나 우리나라가 이탈리아 꼴로 가게 되면 두 가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려움으로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감하든지, 양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땀과 피를 짜내어 헌납하든지…."

도움말/강창덕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전공) 교수, 오정남 전국언론노동조합 마산MBC 지부장

Trackback 0 Comment 1
  1. RTY21.com 2011.06.18 02:01 address edit & del reply

    == R T Y 2 1 . C O M전세계 5개국 L I V E 생 방 송 ==
    - (합)로얄ㅋr·지 노 한국담당 영업팀

prev 1 ···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 233 next